-
형진 님은 강원도에서 오신 처형과 같이 입으라고 커플룩을 사 줬다. 비록 비싼 건 아니지만 그 맘 씀이 너무 고맙다. 아쥬~오랫만에 강화 전등사에 갔다.
강원도에서 언니가 왔다. 핑계김에 철원으로~ 겨울 여행은 강원 북부가 최고지~
울 엄마 송화봉 님이시다. 청상에 혼자되어 그야말로 산전수전, 그리고 공중전까지 다 겪으신 울 엄마~ 울 엄마는 사위 둘과, 딸 둘, 손녀딸 둘과 손주사위, 증손자 셋과 무릉계곡으로 나들이를 나셨는데 좋으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만약 물어봤다면 뭐라고 대답을 하셨을까?
고달픈 삶을 사신 울 엄마, 일일이 좋다, 나쁘다, 라는 표현과 표정에 익숙치 않으셨으나 이날만큼은 살포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셨다. 아린 마음이 이런 것이리라. 엄마집은 아니지만 엄마가 고달픈 일신을 맡기시고 계시던 이레마을에 있는 시조시인 남구만 선생의 사래긴밭 표지석이다. 울집 앞밭은 그야말로 사래깉밭이었다. 오전, 오후에 한 골밖에 못 매니 약천 선생이 노래한 그 사래깉밭은 필시 우리 밭을 두고 노래한 건 아닐까 싶다.
엄마가 계신 이레마을에 갔다. 이른 봄이라 바람은 찼다. 사랑하는 사위와 딸, 손녀딸 둘을 만나셨으나~ 엄마는 평생 자시들에게 부탁이라곤 안하신 분이다. 그러나 이날은 발톱무좀때문에 발톱이 두꺼워져 못자르셨다고 답답해하셨다. 엄마의 막내사위는 기꺼이 장모 발을 잡고 발톱을 자르고 있다. 정말 큰 공사라고 할만큼 힘든 일이었다. 장모님 발톱을 잘라드리려고 나서는 기특한 사위. 난 이 사진만 보면 속울음을 토하게 된다.
어릴때 정서적 안정을 주던 유일한 곳, 북평성당이다. 언니 둘과 함께~
내가 첫 아이를 낳을때가 그야말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강산이 세번이나 바뀌어 내 아이가 엄마가 되고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손주 임태윤군, 장손이라는 영광의 굴레를 쓰고 이 땅에 태어났고 그리고 아이는 백일을 맞았다. 2.3킬로의 저체중으로 태어나 맘을 졸이게 하더니 어느새 정상체중을 회복하고 돌파했다. 세상에 나올때는 다소 왜소했지만 지금은 당당한 사나이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내 삶중 가장 행복한 날, 손주가 나고 그리고 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