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아이슬란드 여행기
    나라밖 이야기/아이슬란드 2019. 7. 24. 09:26

     

    넘칠 때 비로소 아름답다

     

                                                              

     

     

     

     

     

    사람들은 늘 전쟁을 치렀다고 표현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싸울 생각이 없었고 이길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7월도 되기 전에 한 차례 폭염을 겪었던 지라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나는 짐을 꾸렸다.

     

    척박한 화산섬, 물과 불로 상징되는 세상 쓸모없을 그 땅에 콜롬버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그곳에 첫 발을 내딛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 풍광을 돌본 뒤 아이슬란드라고 명명하고 그 누구에게도 그곳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했다는 사연은 오히려 그곳을 나의 여행지 버킷리스트 첫 번째에 올리는 이유가 됐다.

     

    화산폭발로 공항이 봉쇄된 지 한 달째라는 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유럽일대 항공기들조차도 발을 묶였다는 뉴스를 보고서야 내 두꺼워 마지않는 귀가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를 겪고 채 회복도 되기 전 에이야프팔라 요쿨의 화산폭발이 이어졌으니 그곳을 향한 근심과 염려만 있을 뿐, 세계인 그 누구도 용암이 들끓고 있는 그 불모지에 여행을 목적으로 발을 들여놓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아이슬란드, 땅 속엔 불이 끓고, 땅 위엔 얼음으로 뒤덮여 쓸모없는 땅이라며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 애썼던 바이킹족 그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좋은 풍광을 혼자 보기에 벅차기라도 했던지 언제부턴가 슬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혹자는 그곳을 신이 지구를 만들기 전 연습으로 만든 곳이라고도 했으니 뼛속깊이 청개구리 유전자를 가진 나는 임전태세로 그곳으로 날아갔다.

     

    동네 갈매천에 두루미와 청둥오리, 온갖 새들과 곤충, 심지어 맹꽁이의 서식지를 지키겠다고

    행정관청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 만큼 생태에 관심이 많은 나에겐 더 없이 좋은 여행지였다.

    북극에서만 서식하는 제비갈매기, 바다갈매기, 특히 하얀 배와 검은 등, 빨간 부리와 빨간 발을 가져 앙증맞기 이를 데 없는 새,

    퍼핀을 보리라는 기대가 오로라 보기를 깨끗이 포기하고 기꺼이 여름 여행에 손을 든 이유였다.

     

    나의 청개구리 유전자와 쌍벽을 이룬 호기심 유전자가 슬슬 발동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부터 그곳 속살까지 샅샅이 보리라 했던 다짐대로 착륙 30분전부터 두 눈을 부릅떴다.

    그랬다, 마치 첫날밤을 치루고 있는 신혼부부의 침실을 훔쳐보기라도 하듯 나는 꽤 오랫동안 숨을 참았던 듯싶다.

    어서 내려 깊게 잠든 신혼부부의 하얀 이불을 걷어내고 적나라한 침대 속 풍경을 내 두 눈으로 확연히 보리라.

     

    아이슬란드 여행은 국제공항이 있는 서부에서 시작하여 북부, 동부, 남부를 돌아오는 링 로드라 불리는 1번 국도를 따라 도는

    생태환경 여행이다.

    세계자연유산인 수백만평의 용암에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생명을 이어가는, 상상조차도 해본 적 없는 이끼공원과,

    유황냄새와 검은 진흙이 쉴 사이 없이 푹푹 끓어오르는 화산, 십여 분마다 한 번씩 하늘로 분수처럼 쏘아 올리는 간헐천,

     24시간 해가 떠있는 백야, 코발트빛 바닷물에 우유를 탄 것 같은 옥빛 온천,

    천년빙하 또한 국토의 10%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니 바이킹 그들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속내도 알 것만 같았다.

     

    지열활동으로 곳곳에 하얀 수증기가 활활 피어오르고 옥빛 호수들이 물방울무늬처럼 대지를 수놓은 대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서있자니 마치 실어증환자가 된 듯 말을 잃었다.

    멀리서 바라볼 땐 마냥 설렘만 느껴지던 빙하도 기슭에 들어서고 보니 두려움이 빙하의 크기에 못지않다.

    곳곳에 사자의 갈기처럼 크래바스가 겹겹이 큰 입을 벌리고 있고 수백 미터나 된다는 빙하 못이 금방이라도 내 옷깃을 잡아당길 것만 같았다. 하얀 눈과 검은 화산재가 뒤섞여  딱히 무슨 색이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수천 년 세월을 다져온 빙하를 뒤로하고 야생화가 촘촘한 들판에 들어섰다.

    바람과 추위 때문인지 형형색색의 들꽃들은 땅에 붙었고, 빙하가 키워낸 새콤달콤한가하면 삽싸름한 오묘한 야생 블루베리의 맛은

    나를 묵언수행에 들게 했다.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 천년 빙하의 환송을 받으며 다시 빙하가 녹아 유빙이 되어 떠도는 요쿨살론에 도착했다.

    사실 하얀 만년설 아래 푸른빛 유빙들이 떠 있는 호수의 사진이 그곳으로 날아간 결정적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대자연 앞에 선 나 자신은 훅하고 불면 날아가고 마는 민들레 홀씨보다도 못하다는 생각마저 교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겐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에 못지않은 문화유산이 있다면 알싱기와 사가를 꼽을 수 있다.

    사가는 10세기 노르웨이의 미발왕 하랄을 피해 아이슬란드로 도피한 사람들이 황량한 불모지에서  온몸으로 겪어낸 생활상을 산문체 형식으로 엮은 글로 아이슬란드 역사서로서도 가치를 한층 드높인 문학이 됐다.

     

     

    또한 누가 뭐라 해도 아이슬란드를 상징하는 것은 단연 알싱기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알싱기(의회)는 인구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지리적으로 가장 공평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자연형태인 원형무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민주주의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비한다면 200여 년 전에 이미 민주주의의 토대를 쌓고 지금은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문학과 문화와 자연의 조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불과 33만 국민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바이킹이 정복한 땅, 그들이 그토록 숨겨놓고 싶어 했던 아이슬란드는 디지털 시대에서 4차 산업혁명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때에도 종이책을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취급하는 나라이자 작가의 비율이 열에 하나인 문화강국으로도 우뚝 섰다.

    웅장하고 장엄한 대자연과 너무나 고귀한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경외롭기까지 했던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여가 가까워 옴에도 나는 아직도 그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끝은 곧 시작이다, 라는 말과 같이 나는 다시 황홀하게 밤하늘을 수놓을 오로라 여행을 꿈꾸고 있다.

     

     

     

     

     

     

    '나라밖 이야기 > 아이슬란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슬랜드(5)  (0) 2019.07.27
    아이슬란드(4)  (0) 2019.07.27
    아이슬란드 (3)  (0) 2019.07.27
    아이슬란드(2)  (0) 2019.07.27
    아이슬란드(1)  (0) 2019.07.27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