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노르웨이 오슬로(1)
    나라밖 이야기/북유럽 2017. 8. 14. 12:37

     

    스키하면 노르웨이, 노르웨이 하면 오슬로의 릴레함메르 스키점프대 역시 관광상품이다.

    금방이라도 날아 오를듯한 독수리 형상을 한 100년 된 세계 최초 홀멘 콜랜 스키 점프대다.

    하늘을 향해 있는 곳이 케이블카가 오르 내려며 노르웨이 항구의 정경을 한눈에 보게 해 놓았다.

    한가운데 계단옆으로 나 있는 두 줄이 스키점프대까지 걸어가는 계단이다.

    10여분이나 결려  올라가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두근두근 현기증마저 났다.

    하늘로 향하려는 인간의 기본 습성은 과연 무엇에서 기인하는 걸까? 

     

     

     

    오슬로가 배출한 화가 뭉크의 도시이기도 하다.

    오슬로 국립 미술관엔 뭉크관이 따라 있을 만큼 뭉크는 오슬로의 자부심이다.

     

    뭉크를 있게한 작품 절규다.

    뭉크는 불우한 유년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진정한 예술가다.

     

    아버지는 군의군 출신이었지만 아내를 잃고 폐인이 되어 어린 뭉크에게 심한 학대를 저질렀고 동생도 뇌질환을 앓아 죽는 그야말로 뭉크의 가족사는 더 이상 불행을 말할 수 없는 환경을 지녔었다.

    그러나 그 악조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흔들릴때 후원자를 만나 독일 베른에서 미술공부를 하는 천운이 찾아왔고 흔들리는 자신을 표현하는 자화상등,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시켜 세계의 미술계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뭉크는 작품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두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혼자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다"

     

    뭉크는 죽으면서 내몸은 썩을 것이며, 내 썩은 몸위에 꽃이 필 것이고 나는 꽃과 같이 영원히 살것이다라는 가히 예술가 다운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 재산과 전 작품을 자신이 정착했던 노르웨이 오슬로에 기증했고 오슬로시는 그의 미술관을 열어 지금까지 세계인들의 예술정서를 살찌우게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1억 1990만 달러에 낙찰됐다.

     

    이 절규는 뭉크가 앓던 공황장애 발작의 순간을 표현했다고 하는 작품 해설도 있다.

    통상적인 시각으로 볼때 이 주인공은 여자처럼 보이지만 남자이며 귀를 싸맨 모습으로 볼때  견디기 힘든 소음이 느껴지고 그 소음을 석양으로 표현했다고도 한다.

     

     

    로렌초 파시넬리 그림이다.

     흉측 망측하여 고개를 절로 돌리게 되는 그림이 알고보면 너무도 숭고하여 무지가 가져오는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된다.

    딸 페로는 굶어죽는 형벌로 감옥에 갇혀있는 아버지를 면회 갔다가 아사직전의 모습을 보고 감수들의 눈을 피해 기꺼이 가슴을 풀어 헤치고 아버지께 젖을 물리는 장면이다.

    이 사연을 알게 된 로마당국이 감동한 나머지 아버지 시몬을 석방시켜 주었다는 사연으로 유명하다.

     육안으로만 보고, 드러난 현상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선정적이기 짝이 없는 이 한 작품이 숭고한 명화로 재 탄생하게 된다.

     

     

    루벤스의 베드로

     

     

    고흐는 유달리 자연에 집착했지만 자화상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노르웨이 자연을 너무나 사랑했고 피요르드나 만년설, 빙하 등을 화폭에 많이 담았다.

     

     

     

     

    이 작품은 뭉크의 병든 아이다.

    뭉크는 5세때 결핵으로 어머니를 잃었고, 사춘기때 누나 역시 결핵으로 죽게 된다.

    누이 역시 정신병으로 잃었고, 아버지와 남동생 역시 뭉크가 어렸을때 죽고 만다.

    뭉크의 초반기 삶은 그야말로 죽음과 공포와, 질병이 주는 불안감에 휩싸여 살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 병든 아이라는 그림이, 죽음의 방이라는 그림이, 죽은 어머니 등,

    표현으로 보나 제목으로 보나 그의 삶이 얼마나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마돈나라는 작품이다.

    뭉크의 여성관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이 그림을 그릴때는 뭉크 나이 30세 전후였고 인생에서보나 작품으로보나 성숙기에 접어들었던 시기임은 분명하다.

    어찌보면 뭔가를 향한 갈망이 보이고 어찌보면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포기 절망이 보이고~~

    그러나 일각에서는 예수의 어머니 성모로써 복잡다단한 그의 감정을 표현한 거라는 해설도 본 적이 있는데 그 작품에 대한 정확한 해설은 그 작가 본인만 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그림

    모디는 남다른 화풍으로 인물화를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단순하면서도 선명한 선을 이용해 사람의 표정을 잘 나타냈다.

    그의 인물화 대부분이 목을 길게 표현한걸 보면  당시 매너리즘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3살 연상의 여인과 살다 어느날 문득 14살 연하 잔느라는 여인을 만나 또다른 동거를 통해 새로운 화풍에 눈을 뜨던 즈음 알수 없는 이유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꽃같은 여인 남겨진 잔느는 그가 세상과 결별한 다음날 5층에서 꽃같이 몸을 던져 모딜리아니의 곁으로 따라가버리는 애절한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그들이 살던 당대의 예술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여태 그토록 수려한 인물을 가진 자는 없다-

    이 평을 보고나니 그의 인물이 정말 궁금해졌다.

    미친듯이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

     

     

    이 작품은 뭉크의 사춘기라는 작품이다.

    이 소녀의 표정을 보면 놀람과 초조함과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춘기라는 아이에서 성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신체적 변화 등에서 느꼈을 불안감이 아니어었나 하는 나만의 느낌~

    뭉크는 처음으로 그린 누드화 사춘기가 전시회에 걸린 걸 엄격했던 아버지가 볼까봐 덮개로 가릴만큼 아버지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갖고 있었던것 같다.

     

    당대의 한 인물은 뭉크를 노르웨이 최초의 인상파 화가이자 유일한 인상파 화가라고 묘사했다.

    뭉크는 환경적인 요인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찍 삶에 초연했던것 같다.

    이미 26세때 쓴글에 보면

    " 나는 숨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즉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를 그릴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화가라는 직업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할것"

    이라고 했다.

    이런 사상들이 그를 세계적 예술가로, 노르웨이가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기초가 된 게 아닐까 나름 생각해 본다.

     

    그는 1944년 오슬로 근처 에켈리라는 곳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루누아르의 목욕을 하고 나온 소녀라는 그림이다.

    채 마르지 않은 머릿카락과 촉촉한 피부를 감싸고 있는 타올 등에서 뭔지 모를 달콤한 향기마저 느껴지는 그림이다.

     

     

     

    뭉크의 누이동생, 잉케르의 초상.

     

     

     

     

    뭉크의 그날 이후라는 작품이다.  

    그날이라는 의미도 그림을 그린 뭉크 외엔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보는 사람들이 뜻을 입히고 상상을 덮어 해석하는 수 밖엔 ~

    저 여자는 저리 술에 취해 모든것을 포기한 채 널브러져야 했던 그 사연이 궁금하기만 하다.

     문득 슬픔과 아픔이 내 얼굴로 내려 앉는다.

     

     

    뭉크의 생명의 춤이라는 작품이다.

    빨간 원피스의 여인과 검은 슈트의 남자가 춤을 추고 있다.

    두 사람은 사랑의 기쁨을 표현했다고 하는 작품 해설을 봤지만 여자도 남자도 내겐 도무지 사랑의 기쁨이라고는 읽혀지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우리 헤어져,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야~>

    할 것만 같은~

    흰 원피스의 여인의 밝은 표정으로 봐서도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포부를 표현했고.

    검은 원피스의 여인의 무표정한 얼굴은 과거를 되돌아 보는 거라고 한다.

     

     

    작품을 설명하지 않아도 단번에 느껴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

    먹는 것에 대한 절실한 표정이 그대로 읽혀진다.

     

     

    이 작품은 어머니와 딸이라는 작품이다.

    희망을 나타내듯 어둠을 밝히는 둥근 달이 그들 사이를 비추고 있지만 딸도 어머니도 표정이 무아지경에 바져 있는듯 보인다.

    딸의 하얀색 드레스와 엄마의 검붉은 드레스는 무엇을 표현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토루소 조각상이다. 서유럽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숱하게 봐왔던 토루소~

    난 언제나 토루소만 보면 예술성보다 조각가들의 의식세계가 궁금해 진다.

    예술가 그들만의 세계를 감히 내가 알 턱이 없지만 정말 정말 궁금한 예술품이다.

     

     

    투르소는 그리스어로 식물의 줄기라는 뜻을 지녔다.

    르네상스 시대에 발굴된 많은 고전 조각상들이 팔다리가 없는 그야말로 본체로만 형성된 조각상들이 발굴되었고,

    사람들은 그 몸체로만으로도 얼마나 크나 큰 예술적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지를 깨닫는다.

     

     

    로댕의 조각상

     

     로댕의생각하는 사람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