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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 그리고 인간
    내가 사랑하는 여자 2012. 5. 4. 02:12

     

     

     

      화원 쇼윈도우에 화려한 조명을 받은 꽃을 볼 때면 내 얼굴에도 화려한 웃음이 번졌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턴가  제 혼자 토라진 아이처럼 화원의 꽃 보기가 심드렁해졌다. 대신 들로 산으로 화장기없고 수수한  웃음을 찾아 나서는 걸음이 잦아졌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는 숨 쉴 수없는, 감정의 교류와 소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러 우리는 식물인간이라 부른다. 얼마 전 식물인간 어머니를 둔 자식들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달라며 요구한 재판에서 인공호흡기 제거가 허용되어 세인들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 이슈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4년 전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실 때 내게 던져졌던 가장 큰 숙제이기도 했다. 생사를 가르는 위급 상황일 때 인공호흡기를 달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었다. 자식인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당연히 단다는 것에 동의를 했다. 그리고 4년이 흐른 작년 가을 결혼을 코 앞에 두고 파경을 선언하는 여자처럼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겠다며 의사를 번복했다.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데에는  88세라는 적지 않은 어머니의 연세 즉, 세상적인 잣대가 작용했음을 고백한다. 솔직히 말하면  내 어머니가 식물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 살다가 곱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잘하는 일 중의 하나였던  화초 가꾸기도 소원해져감을 느낀다.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한 부담감에서 랄까? 온실 속에서 키워지는 꽃이 아니라 들판에서 온전히 자란 꽃이 그리운 걸거다.  제대로의 모습으로 살다 제 명을 다해 죽어가는 자연에 순응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일 거다. 자연친화적인 사고가 커진다는 것, 인위가 아닌 자연이 그리워지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짐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내가 자라던 시골집은 화단은 물론 뜰이나 뒤안, 심지어 모탕이 있는 곳까지도 꽃밭을 이루어 봄, 여름, 가을은 물론 겨울조차도 눈꽃이 만발하여 사계절 꽃 대궐을 이루었다. 외출에서 돌아와서도 꽃들에게 눈을 맞추는 일은 크나큰 기쁨중의 하나였다. 흙 마당 구석구석에 제 멋대로 꽃을 피우던 나팔꽃, 접시꽃, 꽃잔디, 채송화, 과꽃, 백일홍이 오래전 헤어진 친구처럼 그리운 오늘이다.    전원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우리 부부에게 지인들은 늙을수록 의료시설이 좋은 도시에 살아야 한다며 듣기 싫은 꽃노래를 그치지 않는다. 도심에 갇혀 누릴 의료혜택 대신 전원에서 자연이 주는 혜택을 선택할 우리는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생산되는 농산물보다 자연 속에서 마음대로 자란 산야초를 먹으면서 살기를 소망한다.  가꾸어 진 꽃이 아니라  스스로 꽃을 피우는 야생화를 즐기며 자연인 본연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의술을 빌어 부질없는 목숨만 연장하는 행위에 대한 거부이자 존엄하지 못하게 죽는 것에 대한 반대이기도 하다.

     

      다용도실 청소를 하다 여러개의 빈 화분을 발견한 남편은 한해살이 꽃이라도 심어보자며 몇 개를 내어놓았다. 함께 살되 스스로 숨 쉴 수 없는 것,또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내 소회를 밝힐려다 이내 입을 다물고 만다. 내 엄마의 인공호흡기 문제로 형제들과 왈가왈부했지만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남편에게도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바람을 쐬러갈 겸 꽃을 심어 오자며 화분을 들고 나서는 남편을 따라 가는 걸음이 팔려가는 개 걸음만큼이나 무겁다.  화원의 꽃들은 스스로 자란 꽃이 아니라 돈이 되기 위해 키워진 물건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내키지 않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꽃을 고르느라 신이 났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인 셈이다. 남편은 자못 사무적인 표정의 나를 보고 차의 시동을 걸며 장난기 어린 질문을 한다.“꽃을 보니 왠지 기분이 나빠져?”  ' 아니야, 마음대로 나서 마음대로 꽃피우다  스러지는 들꽃이 더 좋아...'

    그 말은  곧 화초의 인공호흡기 역활을 하기 싫어 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속내를 밝히며 몸을 좌석 등받이에 깊게 누인다.

     

      식물과 인간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없는 밀접한 관계지만  두 단어가 합쳐진 식물인간이란 말 만큼은 내 가족은 물론 누구에게도 적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 세상 소풍 마치고 돌아갈 그 곳이 야생화들의  수수한 꽃웃음이 넘실대는 곳이었음 싶다는 욕심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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