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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랑천을 걸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 2012. 5. 4. 02:06

     

    매일 아침 딸아이와 중랑천을 걷는다. 걸으면서 굳는 몸을 풀고 마음에 고이는 감정의 때를 씻는다. 그럼에도 오늘은 어제 있었던 친구와 있었던 감정의 응어리가 너무 컸던 탓인지 영 나설 기분이 아니다. 내 마음을 읽은 듯 엄마답지 않다는 아이의 시선이 따가워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지난 밤, 첫 서울생활을 시작 했을 때 한 방을 썼던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는 조용하고 마음이 여려 만년 소녀같은 아이다. 그런데 친구답지 않게 급한 듯 서둘러 용건을 말한다.
    “ 부탁이 있어서 전화를 했어. 주점을 개업하려는데, 돈이 좀 부족해서...” 라며 말끝을 흐린다. 딸아이 둘을 혼자 기르면서 힘겨운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주점을 하려고 하느냐며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친구는 내 말을 잠자코 듣는가 싶더니 어느새 전화가 끊겨 있었다. 사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미미할 것임에도 주제넘은 말을 한 것 같아 곧 후회를 했다. 바로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할 말을 한 것인지 안해야 될 말을 한 것인지 머릿속이 온통 엉킨 실타래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중랑천에는 굴삭기의 소음이 요란하다. 햇살조차 없어 물그림자는 더욱 삭막하다. 모래를 파내는 준설작업이 한창이다. 장마철 대비 하상 준설작업이라는 내용의 팻말 옆으로 운동복을 입는 사람들이 지나며 모래채취업자들의 돈벌이 수단이라고 이죽거렸다. 업자들이 모래장사를 하기 위해서든, 기관에서 장마철을 대비하기 위함이던 오랫동안 쌓여왔던 퇴적물을 걷어 내는 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졌다. 황토색 흙물이 넓게 번지는 것이 복잡한 내 심경을 드러내 보이는 것만 같다.

    준설작업을 지켜보며 내 가슴에도 강바닥에 모래만큼이나 켜켜로 쌓였을 감정의 찌꺼기를 생각하니 숨이 차온다. 오염된 강처럼 우정도 세상적인 잣대로 오염된 건 아닌가 싶다.

    강은 물이 흐르지 않으면 강이 아니다. 중랑천은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에도 미세한 흐름조차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강다운 모습은 푸른 물결과 은빛 햇살, 깊이를 가늠케 하는 물소리, 한두 점의 구름이 내려앉은 풍경이어야 한다. 중랑천은 모래가 퇴적되면서 강 본연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이지만 어떤 이는 한국의 세느강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듯이, 내 깊은 내면에는 진정한 우정이라는 잣대로 항변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중랑천은 준설작업으로 바닥을 비우고 나면 은빛 여울이 눈부실 강다운 강이 될 것이다. 구름 한두 점이 내려앉아 물결과 함께 떠내려 갈 것이고, 백로 한두 마리도 고고한 자태로 거닐지 않을까 싶다.

    내 마음도 굴삭기로 모래를 퍼내듯 당장 어제 생긴 감정의 응어리를 퍼내고 싶다. 흐르는 물에 마음에 남아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싶다. 물결이 일렁이는 강물처럼 내 마음도 옛 정이 흐르게 하고 싶다. 그리고 우정이라는 향기에 꽃과 나비도 날아들게 하고 싶다.

    걷는 내내 엉키고 설킨 실타래 같은 머리와 가슴으로 아이가 말하던 엄마다움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조화로운 색깔이 아닌 나만의 색깔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다시 말해 아집이랄 수도 있다. 여태 강한 원색이 나를 표현하는 색깔이었다면 이젠 조화로운 파스텔 톤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 중랑천에서 돌아와 딸아이와 커피를 마신다. 먹다 남은 비스켓 하나를 커피 잔에 담궜다가 천천히 혀끝에 댄다. 비스켓과 커피의 조화로운 맛이 일품이다. 비스켓과 커피 각각의 맛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내듯 나답고 친구다워서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없나보다.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 그것은 각자를 비우고 버림으로서 가능해지지 않을까싶다. 무릇 강은 여울을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흘러야하고 사람은 마음을 비움으로써 아름다운 우정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서둘러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너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그리고 영원한 네 편이 되겠노라고...
    벌써 군데군데 꽃잎을 떨군 개나리에 어느새 연록의 새잎이 뾰족이 얼굴을 내밀었다. 노란 개나리꽃과 연록의 조화가 황홀하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조화로운 나를 비운 가슴에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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