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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기막힌 인연에게
    부스러기 핥아먹기 2012. 10. 21. 22:33

     

    나의 사위 철균에게

    바로 어제였구나, 붉은 보자기로 싼 함을 행여 놓칠세라 소중히 가슴에 품고 상기된 모습으로 들어오던 너의 모습이

    어찌 그리 아름답던지 하마터면 눈물이 다 날 뻔 했단다. 가장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으로 다가와

    내게 딸을 키운 보람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준 네게 고맙다는 말로 서두를 연다.


    너의 부모님이 보내신 정성이 듬뿍한 함을 받고 혼서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딸을 보내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단다.

    이제 보내야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 분신 두연이를 기꺼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만 같구나.

    세월은 흘러가고 사람 또한 변해가지만 함이라는 게 주는 의미는 절대 변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잘 알겠지만 혼서지의 의미는 일부종사와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 만큼 혼서지의 내용을 늘 되새김한다면 그 어떤 어려운 경우가 닥치더라도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듬직한 사위 철균아,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사위가 됨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니?

    너의 어머님 아버님께서도 소중하고도 귀하게 잘 키우신 아들의 배필로 여러모로 부족한 내 딸 두연이를

     기꺼이 며느리로 받아들여 주시겠다니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있겠니?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사함으로 너희 부부를 바라볼 일이고 너희들 역시 사물이든 사람이든 자연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 그것은 샘물과 같아서, 천사의 쌀독 같아서 쓰는 만큼, 비우는 만큼 소리없이 채워지곤 한단다.

    반면 쓰지 않으면 썩기 마련이란다.

    또한 사랑도 차와 같아서 닦고 조이고 기름치지 않으면 어느새 그 자리엔 녹이 슬어버리고 말 것이다.

    사랑과 감사를 차곡차곡 쌓지만 말고 나눈다면 기쁨은 배가 되어 너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살다보면 마냥 기쁠 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은 떠도는 구름 같아서 때로 황홀한 그림을 그려내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지만, 때로 먹구름을 몰고 와

    우산을 준비하기도 전에 비를 흩뿌려 낭패를 안겨주기도 할 것이다. 살다가 힘들 때 삶을 먼저 살아본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그 속에 분명 답이 있을 것이다.

    행여 하찮은 양말 한 짝 때문에, 청소 때문에, 리모컨 때문에 소중한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모든 사고의 중심이 사람이어야, 즉 사람이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는 말이란다.

    그리고 좋은 일이 생기면 네 덕이야, 라고 말할 줄 아는 여유와 혹여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내 탓이야,

    라고 말할 줄 아는 아량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리고 출근길에 잠시 머무는 공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면서 입 꼬리를 살짝 올려 자신에게 웃어도 줄 줄 아는 센스와

    전철 안에서 지쳐 자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며 비록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속으로 응원을 보낼 줄도 아는 멋진 사람이었음 싶다.

    승진은 누구라도 좋아하고 감사하는 일이 아닐 수 없듯이 이제 딱 일주일 후면 너희들은 어른으로 승진하는 기쁨을 맛 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기쁨을 오랫동안 누리지 못하고 잊기 십상이란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살다가 삶이 심심하다고 생각할 때, 뭔가 재미가 없고 심드렁해지면 아파트 숲을 벗어나

    은빛 여울이 흐르고 넓은 하늘이 보이는 중랑천 뚝방길을 거닐어 보렴.

    무상으로 주어지는 세월이 계절의 변화로 화답하는 자연을 보면 뭔가 번쩍하는 지혜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오늘로서 결혼식이 딱 일주일이 남았구나.

    끝으로 내가 참으로 소중하게 두연이를 키웠음을, 너희 부모님이 너를 참으로 귀하게 키웠음을 늘 잊지 말고

     품격있고 모든 이들의 본보기가 되는 부부가 되길 다시 한 번 당부해본다.


    철균아,

    65억 인구 중에서 인위적으로 맺어진 유일한 인연인 너, 이 축복받은 인연을 우리 함께 두고두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사위 철균아 정말정말 사랑한다.

                                                                                                               2012년 9월 26일

                                                                                                                두연 엄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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