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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 그리고 갠지스 강
    부스러기 핥아먹기 2012. 10. 10. 07:28

     

    엊그제 신혼여행을 떠난 딸이 오월 어느날, 신혼여행을 떠난 후 받도록 쓴 인터넷 우체국 맞춤형 편지가

    바로 어제 도착을 했네요, 나는 이 편지를 받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답니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내가 처한 환경과 여건에서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건만

    아이의 마음에는 나름의 아픔과 상처가 있었었던가 봅니다.

    딸아이가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아이가 많이 방황하던 시기였지요.

    딸아이는 1학기 장학금을 제게서 가불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곳,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으로 떠났었지요.

    그리곤 어느 날 마더 데레사 하우스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고 짧은 메일을 보내 왔었기에

    나는 그 아이가 그리 열병을 앓고 있는지 정말 몰랐더랬습니다.

     

     

    그 무렵 나도 내 인생에 있어 참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있던 때였었지요,

    심신이 지쳐갔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두 딸을 가진 나로서는 아이들은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그 힘듦을 나눌 대상이 없었고 오롯이 온 몸으로 내 혼자 그 어려움을 감당해야 했던 시절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 역시 온몸으로 열병을 앓았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

    그때도 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첨으로 떠나는 두달 배낭여행의 준비를 해줬던 기억이

    선명한데 그 아이의 가슴 속에 그리 불덩어리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자책감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답니다.

    아이가 남긴 편지전문입니다. 이 편지를 쓸 때가 5월이니까 신혼여행 예약을 하던 무렵이 아니었나 싶네요.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

    고요한 어둠 속 신선한 공기에서 울리는 떨림에 가슴 설레는 5월의 새벽, 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이집에서 그리고 엄마 아빠 품을 떠나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갈 날이 어마 남지 않았네요.

    이제는 더 이상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든든한 품에 기대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막막하게 다가오네요.

     

    돌이켜보면 제 인생의 시작에는 항상 엄마 아빠가 함께였어요,

    첫 울음소리, 첫 걸음마, 첫 입학 첫 졸업, 첫 출근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지금 이 순간,

    엄마 아빠 곁을 떠나가기 위해 한 발자국씩 발걸음을 내 딛는 요즘, 부쩍 마음 한 구석이 선선해짐을 느낍니다.

    엄마 아빠 말투에서 그리고 행동에서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보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외로움, 쓸쓸함, 서운함이 그대로 느껴져 마음 한구석이 아리기도 하고

    문득 서글퍼지기도 하네요,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는 서운한 마음 반,

    그리고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떠나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 반,

    스무 일곱 해를 엄마 아빠와 함께하며 좀 더 어른스럽고 좋은 딸이 되어주지 못해서 죄송해요,

    엄마 아빠는 항상 내가 착한 딸이어서 항상 고마웠다고 말하지만,

    엄마 아빠야 말로 내게 있어 항상 자랑스럽고 고마운 분들이었어요,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 지금껏 함께 한 일이 내게는 그야말로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어요.

    말썽도 많이 부리고 곧잘 신경질을 부리기도 하고, 고집이 센 저를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할퀴어 낸 마음의 상처도 부모라는 이름으로

    항상 보듬어 안고 함께해 준 엄마 아빠께 항상 감사해요.

     

    언젠가 철없던 시절에는 엄마 아빠를 미워한 적도 있었어요,

    항상 받은 것보다 받지 못한 것들을 생각했고,

    고마운 면보다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들을 찾아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었죠,

    그때 처음으로 집을 떠나 인도로 향했어요,

    태어나 첨으로 엄마 아빠로부터 가장 멀리, 가장 오래 떨어져 지냈던 시간들이었어요,

    난생 처음 장장 열한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인도 공항에 들어선 순간, 후텁지근한 공기가 온 몸에 덕지덕지 붙어 끈적끈적하게 속눈썹마저 엉겨 붙은 것 같았어요,

    밤하늘에는 비가 쏟아져 내리고 어둠 속 검은 도로를 질주하며 두근거리는 마음과 묘한 해방감을 느꼈어요,

    헌데 그것도 잠시 호텔 침대에 누워 벗겨진 천장 그리고 무섭게 돌아가는 팬을 보며

    집이, 그리고 엄마 아빠가 그립더군요, 벗어나고 싶던 집이, 그리고 미웠던 엄마 아빠가요,

    독한 감기게 걸려 눅눅한 호텔방에서 홀로 종일 앓았던 그날에는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못내 견디기 힘들었어요.

    생각해보면 내가 웃고 울고 화내던 시간 속에 항상 엄마 아빠가 있었어요.

    언제나 나는 엄마 아빠의 품안에서, 사랑과 배려 안에서 살고 있었던 거예요,

    몸이 나아져 밖으로 나와 집에 건 전화에 엄마 아빠는 그저 몸 건강하라며,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죠,

    전화를 끊고 호텔방으로 돌아오는 길, 먼지와 각종 소음이 섞인 그 길을 걸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ㅡ,

    잊고 있었지만 그저 숨 막히고 답답하다고 생각했지만 엄마 아빠는 내게 있어 삶이 절망스럽게 느껴졌던 순간들에도 너를 믿는다, 며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유일한 사람들이니까요,

     

    나를 강하게, 무엇이든 노력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분들이니까요,

    그 낯선 여행지에 여행을 마치는 순간까지 여행지에서의 낯설음과 새로움보다 그 그리움의 힘이 저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사랑하는 엄마 아빠 곁을 떠나가는 지금,

    탯줄 끊긴 아이처럼 불안하지만 한 편으로는 저는 제 미래,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가져다 줄 가능성을 믿어요,

    엄마 아빠가 늘 저를 믿어 주었듯이, 또한 엄마 아빠가 그러하였듯이,

    인생을 살아가고 사랑을 이어가고, 가능성과 책임을 이어가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스무 여덟 해 전, 엄마 아빠가 서로의 손을 맞잡았듯이 저 또한 부끄럽지 않게 용기를 내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항상 지켜 봐 주세요,

    변함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ㅡ 아름다운 오월의 새벽 딸 두연이가 ㅡ

     

    ~ 저도 머지 않은 날, 딸아이가 불덩어리를 안고 떠났던 그 곳, 나라바시를 가야겠다고

        밤새 생각했습니다.  내 딸아이와 갠지스 강가,

        묘한~ 야릇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감성의 물줄기를 느껴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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