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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족 통일문예대제전 수상작(도움닫기)
    내 가슴속의 빨래터 2009. 6. 20. 11:45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아이가 비행기가 왜 버스처럼 달리기만 하냐면 묻는다. 오늘따라 이륙을 위한 비행기의 도움닫기 시간이 길다 싶더니 드디어 은빛 날개를 퍼득이며 힘차게 창공으로 솟아오른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딸아이와 처음으로 단 둘이 가까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길이다. 고등학교 졸업은 새로운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는 이륙단계인 셈이다. 멀리뛰기는 도움닫기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듯이 잘 준비된 도움닫기로 새 출발을 응원하고 싶다.

    공항에 도착하자 관광안내를 맡은 아가씨가 한국어 피켓을 들고 일행을 반긴다. 아가씨의 고향은 연변이고 부모님 고향은 이북이지만 남한동포를 만나는 기쁨이 여간 크지 않다며 들뜬 음성이다. 여행 기간중 이미 알고 떠난 바대로 가이드 아가씨는 한두 군데의 쇼핑코스를 안내했다. 딸아이나 나나 국내에서도 쇼핑에 별 취미가 없는지라 중국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가이드 아가씨는 마지막으로 북한당국에서 직접 개관한 북한 특산품 센터라며 안내했다. 입구에서부터 북한 당국자라는 사람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소개가 장황했다. 아이는 벌써 짜증이 난 표정이 역력하다. 뒤이어 같은 동포로서 아사직전의 북한의 어린이들을 돕는다는 좋은 취지로 특산품을 사 주었으면 한다는 가이드 아가씨의 간곡한 당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마침 고지혈증에 좋다는 한약재를 소개했다. 한국 사람들은 몸에 좋다는 것엔 물불을 안 가린다지만 나만은 늘 예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포애를 자극하던 아가씨의 설명이 나의 귓전을 떠나지 않아 딸아이에게 동의를 구했다.

    ‘배곯는 북한아이들을 도울 겸 살까봐?’

    라는 내 말에 딸아이는 매몰차게 내 팔목을 잡아끈다.

    “엄마, 얼어 죽을 무슨 북한 어린이야, 굶는 남한 어린이도 얼마나 많은데...”

    그 말 또한 틀리지 않아 못 이기듯 딸아이에게 이끌려 나오고 말았다.

    나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했다가 공비로부터 입이 찢겨 죽었다는 이승복이와 동년배이니 어쩌면 어렴풋이 전쟁을 겪은 우리의 윗세대보다 반공사상이 더 단단히 무장된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북한 어린이를 도울 이유는 충분하겠기에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딸아이의 말도 맞긴 맞는 말이다. 남한 어린이도 굶는 아이가 많다는 것은 사실이지않는가?

    나는 아직도 어릴 때 드물지 않게 삐라를 줍던 기억이 생생하다. 선생님의 삐라를 줍는 대로 즉시 학교에 가져와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만지면 손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고,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에서는 마치 읽으면 장님이라도 될 것만 같은 공포심에 휩싸이곤 하던 세대를 살아왔다. 그런 세대를 살던 내가 낳은 아이가 어느덧 4반세기를 살고 있고, 새터민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탈출한 사람도 그 수를 헤아리기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새터민 단체에서 5~60년대와 반대로 삐라를 대형풍선에 담아 북으로 날려 보내는 행사를 하는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심심찮게 본다. 이데올로기로 잘 무장된 50년대 전후 세대로서 그 장면을 볼 때면 이데올로기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선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탈북자들의 대부분이 5~60년대 부모와 그 자녀들이 주류를 이루는 걸로 봐서 북한의 이데올로기 붕괴는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됨을 알 수 있다. ‘자유를 찾아서’ 라는 것이 탈북의 명분이지만 어쩌면 ‘가난을 피해서’ 라는 이유가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통일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본적이 있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20대에서 가장 높게 나오고, 40대 이하에서 현재와 같은 분단 상태가 좋다는 의견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한다. 그러니 굶는 북한 어린이라는 말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딸아이를 이해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남한 어린이든, 북한 어린이든 같은 민족이며 동포라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일 만도 하건만 그렇지 못한 딸아이를 보며 자못 걱정스럽다. 사상에 앞서 나보다 어려운 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잃어 가는 각박함이 안타깝다. 나와 우리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고 노래하던 우리세대를 이해시키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사상을 떠나 같은 민족으로서 문화와 정서의 소통이라도 이루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통일은 한 민족을 향한 사랑,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제 논에만 물을 대는 아전인수가 아니라, 조금 부족하더라도 갈라진 남의 논바닥에도 물을 흘려보낼 줄 아는 여유를 되찾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기성세대들이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 않는가! 피를 나눈 형제는 내가 싸워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니다. 쟁취와 투쟁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지 않는가!

    이륙을 위한 비행기의 도움닫기 시간을 왜 날지 않고 달리기만 하냐며 지루해 하던 아이가 힘차게 솟아오르던 비행기를 보며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듯이,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되고 충분한 도움닫기 시간을 갖고 나면 남북한 한민족이 함께 탄 비행기는 힘차게 전 세계 창공을 누비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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