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창고 추억창고

11월 19일 순담계곡 잔도가 개방, 개통된다니 짝사랑하는 철원에 아니 갈 수 없었다. 잔도길을 따라 잠시 걸었을 뿐인데 너무나 낯익은 그 도보부교가 나타났다. 고석정에서 순담계곡 얼음위를 오리처럼 뒤뚱대며 걷다가 가끔 고개를 들면 철 이른 진달래가 소줍게 웃어주던 그 날이 생각났다. 한탄강 한 가운데로 지렁이가 기어가듯한 그 정겨운 풍광이다. 서너해전 설날에 그 길을 걸으며 나는 꺼이꺼이 속울음을 삼켰었다. 친정부모님도 세상을 달리한 지 오래고, 몇 있는 자매와 명절을 함께 즐길 처지도 서로 아니고, 시댁 동기간과의 관계도 끈같던 어른들이 가시고서는 예전만 같지 않다. 그날은 20여년을 기일에도, 명절에도 목욕재계하고 지극정성으로 장인,장모 제사를 모셨던 남편에게도 족쇄를 풀어주고 맞은 첫 명절 나들이..

바라길을 4시간 반을 걸었다. 이제 막바지 신두리 해안사구로 들어선다. 내가 좋아하는 고니 한마리가 창공을 날아 사뿐히 해변에 내려앉았다. 늘 끝은 아름답다. 이번 트래킹 길은 잊지못할 추억 하나를 남겼다. 목숨처럼 여기던 내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아내의 핸드폰을 찾겠다고 왕복 2킬로 산길을 다녀온 남자. 남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데 나 스스로 냉큼 약속을 했다. ' 늙어서 잘해줄게'

이 여행은 순전히 아이를 무탈하게 잘키워 결혼시킨 공로라지만 그렇다고 호화호텔도 아니고, 그 흔한 글램핑장도 아니다. 늘 해오던 대로 태안 해안국립공원 학암포 캠핑장에서 2박 3일이다. 아이를 키워 시집보내고 큰일을 잘 치른 공로라는 거창한 테마와는 다르게 회를 먹고 받아온 매운탕을 끓여야 했다. 다행이 내가 좋아하는 참도미 매운탕. 먹을거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코펠은 대동하지 않았던 터. 이일을 어쩌나~ 언젠가 편의점에서 봤던 황금빛 알루미늄 냄비가 퍼뜩 생각났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난로 위에서 바글바글 끓던 황금빛 냄비에 참도미 매운탕 맛은 둘이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바로 그 맛이었다. 잠시 서운했던 마음은 잊기로 했다. 학암포에서 시작하여 신두리 사구해안까지가 바라길 1코스다..

32년 최선을 다해 키웠다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는다. 늘 입버릇처럼 해왔던 말대로, 인생은 팔자대로~ 사랑하나 믿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딸아이를 위해 행복하라는 기도밖에~ 첫째 딸아이를 시집보내고 9년만에 둘째 아이마저 시집을 보냈다. 둘만 뎅그마니 남았다. 그렇다고 늘 주말을 함께 보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계절적으로도 만추, 깊은 가을과 초겨울 사이에 간절기는 기온보다 마음이 더 시리다. 32년이나 키워 보냈는데도 허허롭기 이를데 없고, 36년을 살았는데도 나눌 이야기가 굳이 없다. 님이라는 단어에서 점 하나 찍으면 남이라지만 아직은 님이고 싶은 사이던가. 허허로운 집안 공기를 피해, 변함없어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을 피해 우린 태안으로 간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늦가을 솔향기길을 걸으며 텅빈 마음에 짭..

토요일이다. 미세먼지가 자욱하다. 집에 있기엔 지루하고 따분하다. 마음이 헛헛할때면 아가가 엄마의 젖을 찾듯 우린 숲을 찾는다. 멀지 않은 곳, 음성 명품숲이라고 알려져 있는 원통산 숲길을 갔다. 우릴 맞는 숲은 언제나 넉넉하고 안온함을 느끼게 해준다. 넓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솔길을 오른다. 사람이 많이 오간 흔적은 없는 듯하고, 새소리만 간간히 자기들의 영역임을 알리고있다. 산 중턱을 깍아서 만든 길은 아직 다져지지 않은 듯 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무리없이 찾을 수 있는 이 길이야말로 하늘길이 아닐까 싶다. 음성시내가 조망가능하고 켜켜히 둘러쌓인 산맥들이 (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하는 길이다.

쌍폭포다, 물론 쌍으로 흐른다고 붙혀진 이름일테다. 왼쪽 폭포는 박달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고, 오른쪽은 3단 용추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이 한 곳으로 떨어진다. 언제봐도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자랑스러운 나의 고향. 그 이름도 흔하디 흔한 용추 폭포다, 하지만 용추폭포 중 최고 폭포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제 쌍폭포, 선녀탕을 지나 협곡을 지나고 가파르기를 80도는 됨직한 계단을 올라 하늘문을 향한다, 하늘을 가려면 누구나 거치거야 하는 문이 있다면 바로 이 문일 것이다, 하늘을 가는 문이 이토록 멋있다면야 ~ 바위와 바위 사이에 터억 자리를 잡은 직사각형의 바위가 문 천장이다. 이 풍광도 전국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내가 본 풍광 가운데서는~ 요걍바위 쉼터에서 내가 지나온 미륵바위, 산성, 마천루를 건..

12폭포가 쭉~ 펼쳐져 있다. 이곳 또한 울 아부지가 아들을 낳겠다고 백일 기도를 드렸던 두타산 밑이니 울 아부지도 아마 이 풍광을 보셨지 않았을까? 무의미한 상상을 또 해본다. 석간수가 나오는 곳을 향해간다, 금방이라도 쏟아질것만 같은, 즉 하늘이 곧 무너질것만 같은 공포심을 안은 채~ 돌과 돌 사이에서 물이 나온다는 석간수~ 의심이 많은 난 200년을 산다해도 패스~ 문간재 신성봉에 앉아 코앞에 펼쳐진 절경을 건너다 보며 저긴 영원히 가 볼 수 없는 곳인가를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나, 시대를 잘 만났다, 40년만에 개방한 올해가 원년이 됐고 난 그 원년에 그 곳에 발자욱을 남긴다. 이 가파른 바위산 밑으로 목숨을 걸고 공사를 했을 얼굴 모를 그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내 고향, 동해 그리고 무릉계곡~ 젊은 시절, 문간재에 앉아 저 곳은 왜 갈 수 없을까가 늘 궁금했었다. 40년만에 개방했다는 베틀바위, 마천루지만 기회는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 조급하진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가 준 절호의 기회는 왔다, 일주일 내 강릉으로 출장 교육을 다니던 남편이 베틀바위를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야말로 말년이니까~^^ 불현듯 따라 나섰다. 고향으로 가는 ktx 에 첨으로 몸을 실었다. 안내소를 지나 곧장 베틀바위 산성길로 접어든다, 학소대가 건너다 보인다. 무릉계곡 초입, 주차장과 상가들, 그리고 멀리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고사목이다, 고사목을 볼 때 마다 생각나는 의문이 있다, 저 나무가 살아 있을때 울 아부지도 살아 계셨을까, 하는 의문~ 누구도 못말리는 습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