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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세프, 임지호,
어느날부터 요리보다 인간미로 다가온 그다,
꼭 한번 가보리라 벼르다 가까스로 한달 전 예약을 마치고 5월 29일 산당의 어버이날을 보내게 되었다/
어버이날이라 해봐야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삐쭉 내민 봉투가 전부다.
아이들의 마음이라고 전한 봉투는 동짓달 마당가를 나뒹구는 바싹마른 낙엽처럼 서걱댔고,
5월 8일이던, 5월 29일이든 우리에겐 별 의미는 없다.
맛집이라고 찾아 다녀본 적이 없던 우리가 산당을 찾기로 한 것은 우리를 위한 날,
즉 어버이날임을 한번쯤은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산당 주인, 사람 임지호님을 만나고 싶은 것이 더 큰 의미라면 의미였다.
아니나 다를까 임지호님은 방송 스케쥴로 자리를 비웠고 의미없는 한 상을 눈으로 먹고,
가슴으로 먹고, 까칠한 입으로 먹고 왔다.
정갈하고 잘 차려져 나오는 코스정찬과 잘 꾸며진 분위기에 취해 그나마 어버이날을 즐긴 근거를 여기에 남긴다.
아이들아 고맙다, 늘 너희들이 준 돈은 피같은 돈이라 생각했지만 이젠 메마른 낙엽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너희들이 준 봉투로 다소 쓸쓸했지만 나름 잘 즐겼다,
근디 담부턴 우리 손으로 예약하고, 우리 발로 찾아가는 어버이날이 아닌 너희들의 초대에 기꺼이 응해 따스하고 행복한 어버이날을 즐기고 싶구나.
6월 12일, 산당에 다녀온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방랑식객 임지호님의 별세소식이 전해졌다.
언젠가 산당에 다시 가면 그와 음식과 철학을 논하고 싶었던 나의 소망이
구슬픈 울음을 토해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어릴적 아픔을 나누고 싶었던게다.
잘 가여, 그대~
아픔을 훌훌 털고 하늘로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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