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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순담계곡 (21, 11, 27))구신 여행가다 2021. 12. 6. 13:08
11월 19일 순담계곡 잔도가 개방, 개통된다니 짝사랑하는 철원에 아니 갈 수 없었다.
잔도길을 따라 잠시 걸었을 뿐인데 너무나 낯익은 그 도보부교가 나타났다.
고석정에서 순담계곡 얼음위를 오리처럼 뒤뚱대며 걷다가 가끔 고개를 들면 철 이른 진달래가 소줍게 웃어주던 그 날이 생각났다.
한탄강 한 가운데로 지렁이가 기어가듯한 그 정겨운 풍광이다.
서너해전 설날에 그 길을 걸으며 나는 꺼이꺼이 속울음을 삼켰었다.
친정부모님도 세상을 달리한 지 오래고, 몇 있는 자매와 명절을 함께 즐길 처지도 서로 아니고,
시댁 동기간과의 관계도 끈같던 어른들이 가시고서는 예전만 같지 않다.
그날은 20여년을 기일에도, 명절에도 목욕재계하고 지극정성으로 장인,장모 제사를 모셨던 남편에게도 족쇄를 풀어주고 맞은 첫 명절 나들이였다.
나 역시 제사를, 차례를 지낼때마다 느낀 무의미, 하다는 단어에 천작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족쇄같았던 차례없는 첫해 설날~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이별이었음을 설날 아침에서야 나는 알았다.
집에서 떠나 30여분을 가도록 말 한마디를 나누지 않은 채, 차 안은 침묵이 흘렀다.
그 30여분의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얼굴도 못본 장인어른, 장모님 제사지내준 그 은혜
평생 잊지 않을께, 라며 침묵을 깬건 나였다.
40대였다, 매일매일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았었다.
삶은 절대 순탄하지도 않고, 호락호락하지도 않았다.
결혼할때 조건, 처음 조건은 영원하지 않더라. 가 지금은 나의 어록으로 남았듯이 살얼음판 같던 부부관계를 이어 준것은 다름아닌 세월이었다.ㅣ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족쇄들이 세월따라 하나 둘 벗겨졌지만 순담계곡 얼음길을 뒤뚱뒤뚱걷던 그날, 나의 가슴은 복잡미묘했고 살을 에이듯한 추위만큼 내 마음도 아렸다.
11월 27일, 순담계곡 잔도 시작점에 서서 한탄강을 내려다 보자니 그날의 기억들이 떠올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협곡 바위에 의지한 잔도길이 아득해 보이고 현기증이 나고 철망 바닥밑으로 느껴지는 공포감때문에 걸음을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내가, 아니 우리 부부가 다시 이어나갈 삶 역시 이 잔도길처럼 공포스러운 날도, 두려운 날도 없지 않을 것이며, 물론 아스팔트 위 처럼 평탄한 날도 있으리라.
죽는 날까지 생노병사를, 희노애락을 누구나 겪지만 조금 덜, 감당할 만큼만 겪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겨울 서너달, 한달에 두어번은 재두루미의 화려한 몸짓을 보러 철원으로 간다.
나의 사랑, 재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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