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밖 이야기/뉴질랜드

밀포드 가는 길

가자, 떠나자 2022. 11. 8. 02:48

반지의 제왕 촬영지 에글린턴 밸리다,

사실 나는 그곳 풍광은 영상으로 수도 없이 봤지만 정작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수십만평은 족히 될 광야를 둘러싸고 있는 설산과 호수, 그리고 숲~

영상으로만 늘 보던 풍광이 내 눈앞에 펼쳐졌지만 정작 나는 말을 잊었다. 

아니 내 능력 안에선 그 어떤 표현도 떠오르지 않았다. 

바람이, 빙하에서 생성된 바람이 에글린턴 평원에 휘몰아 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뉴질랜드의 봄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일기예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의 뜻을  그곳에 가서야 이해가 됐다. 일년중 200일이 비가 온다는 곳이니  하루에도 몇번씩 변하는 날씨는 당연하고도 당연하다. 

 

밀포드 트랙 중 건 레이크 트랙이다.

죽고, 다시 나고,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자연의 순환이 한 눈에 보이고 느끼게 되는 곳이다. 

 

나무의 형태도  크기도 비교 물체가 없다면 사진으로 봐서는 상상불가다. 

자연에 비해 너무도 미미한 나의 존재~

수백년 수천년을 살아가는 나무의 수명 비해 인간의 수명은 너무 짧다고 느껴지는 곳

 

미러 레이크다, 세계 곳곳에, 남섬에만도 미러 레이크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미러 레이크라는 관광표지판을 당당히 부여받은 곳이 이 미러 레이크다.

가기전 본 동영상에는 호수에 이름표를 거꾸로 세워놓아 글씨가 제대로 비춰진 반영을 보고 그 기획력에 놀랐던 곳이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 미러는 그 이름값을 하지 못했고,

미러호수에 상징같던  표지판은 얼마전 큰 홍수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게 뭐라고 괜히 서운함에 범죄현장에서 물증을 찾는 형사처럼 이곳으로 저곳으로 한참을 살피다 무거운 발걸음을 떼야 했던 곳이다.

 

테아나우에서 밀포드를 가려면 1,270미터 길이의 호머터널을 지나지 않고서는 갈 수없다.

윌리엄 호머라는 사람이  그의 가족들을 총 동원해  18년간 화강암을 뚫어 1954년에 개통했다고 하니 

호머터널이라는 이름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이름이다. 더더군다나  2차선을 뚫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일방통행으로 오갈 수 밖에 없고 교통의 원활을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것 또한  당연하고도 당연하다. 

신호를 보고 길게는 10분을 기다려야 하는 이 방법조차도 관광상품이 됬다.

전광판 대기시간은 내가 기다리기 시작한 지 5분이 지난 시각이다. 그러나 그곳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허락된 시간이기도 해서 지루하지 않게 기다릴 수 있다. 

 

1.3킬로나 되는 터널을 빠져 나오면 이 터널 밖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주차장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가 빠져나온 터널 입구도 보인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그 터널을 다시 빠져나가려는 차량의 행렬들도 볼 수 있다.

드디어 멀고 먼, 그리고 사연도 많았던 밀포드에 도착했다. 

사실 밀포드는 캠퍼밴은 물론이고 렌트카 등 운전에 자신없는 사람들에겐 퀸즈타운에서 원데이 투어로

다녀오기를 권할만큼 도로 사정이 최악이다.

일정 구간은 사고시 보험 보상이 되지 않다고 고지되어 있을만큼 위험구간이기도 하다.

퀸즈타운에서 밀포드 원데이 투어는 우리나라 서울에서 남쪽 끝까지 당일 오가야 하는 강행군 투어라고 생각하면 맞다.

우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코스였지만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고자 캠퍼밴 여행을 선택했으니 위험을 감수하자,,, 로 추진한 곳이다.  

그러나 긴장과 긴장 끝에 겨우 도착한 캠핑장, 캠퍼밴 18일 일정 중 가장 비싼 6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만큼 공간 자체가 없는 험준한 캠핑장이다. 

그러나 비싼만큼 이런 풍광에서 잘 수있다는 자체만으로 비용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

시소를 타듯 한 긴장과 흥분 사이를 오가다 우린 일정 중 가장 큰 난관에 맞딱드렸다. 

배정받은 싸이트는 캠퍼밴에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다. 바로 앞 빈 싸이트에 다시 연결을 시도했지만 그 또한 무위로 돌아갔다. 남편은 위기에 강한 남자라고 자타가 공인한 사람이지만 한시간이 넘도록 차량에 전기공급이 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남편의 표졍은 눈에 띄게 굳어져 갔다.

짧은 영어에 옆 싸이트 젊은 백인청년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별무소득~

다시 관리소 직원을 불러 다른 전기 인입선으로 전기공급을 시도했지만 그 또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남섬에서도 가장 추운 곳이니 전기 공급이 되지 않으면 취침 자체가 불가한 곳이다. 그리고 남은 일정은 어떻게 해야하나,,, 머리 속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슬슬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관리소 직원의 진단이 떨어졌다. 다른 싸이트로 옮겨보자, 였다.

사실 다 알아듣는 건 물론 아니고, 대충 알아들은 내용이었지만 관리소를 다녀온 직원은 43, 이라는 쪽지를 들고 왔다. 

시간은 한시간이 훌쩍 지나고 두시간을 향해 갈 시간이었다.

말도 잊을 위대한 풍광을 즐길 시간에~

우린 긴장과 기대로 43 싸이트로 이동했고 인입선을 꼽자마자 캠퍼밴 전기공급을 알리는 불이 들어왔다.

6학년때 첨 전기가 들어와 백열등이 켜 지든 순간이 떠올랐다.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살듯 전기의 고마움도 잊고 살던 우린 다시금 너무 흔해, 귀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우여곡절없는 여행이 무슨 재민가, 라고들 하지만 나는 빌고 또 빈다, 부디 우여곡절이 없기를~